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석문 전투 (문단 편집) == 영향 == 한 차례 승리 후 들떠 지나치게 북진 추격하다 역습으로 전선이 후퇴했다는 점에서 훗날 [[고려]]의 [[고려의 여진 정벌|윤관의 여진정벌]]와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이 전투의 패배로 신라군은 다수의 지휘관을 잃었고 병력도 많이 잃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만다. 아직 본토 방어는 가능했지만 더 이상 황해도 이북에서 공세적으로 작전을 벌이기는 힘들어진 것이다. 게다가 고간은 여세를 몰아 고구려 부흥군이 지키던 백수산을 공격하여 함락했고 신라군은 이를 지원하려고 출동했으나 오히려 당군에게 패하고 만다. 결국 신라는 당군과의 전면전을 회피하고 수세적으로 전략을 변경해야 했으며, [[임진강]]선에 수많은 성을 쌓고 우주방어에 들어갔다. 신라군의 도움을 더 이상 바랄 수 없게 된 황해도 일대의 고구려 부흥세력은 이후 당군에게 연전연패했다. 백수산이 함락되고 나서 우장성, 대양성, 동자성이 함락당하고 임진강에서도 고구려 부흥군이 당군에게 격파당하자 남은 패잔병은 신라로 진입하여 사실상 소멸했고, 임진강 이북은 나중에 [[매소성 전투]]에서 신라가 승리하여 당군이 퇴각할 때까지 당나라의 세력 하에 들어갔다. [각주] [[분류:신라]][[분류:수당시대/전투]][[분류:삼국통일전쟁]][[분류:지상전]][[분류:황해도의 사건 사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